1.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 정의(定義)
풍수지리학이란 하늘과 땅의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발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
2. 풍수지리(風水地理) 원리(原理)
풍수지리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기초로 정리된 학문이다. |
3. 형기론(形氣論)과 이기론(理氣論)
산과 물 등 자연의 외적인 모양을 보고 길지를 찾는 것이 형기론이다. 반면에 이기론은 방위와 시간 등의 음양오행 작용을 살펴 길흉화복을 논하는 이론이다. 형기는 외적 형상인 체(體)이고, 이기는 작용인 용(用)으로, 별개일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의 외모를 보고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을 형기라고 한다면 성격을 판단하여 사람을 보는 것은 이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형기는 용(龍), 혈(穴), 사(砂), 수(水) 등 풍수지리의 외적 변화 현상을 우선으로 보는 방법이다. 이기는 용, 혈, 사, 수의 방위를 측정한 다음, 음양오행법(陰陽五行法)을 따져 그 적법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
4. 양택풍수(陽宅風水)와 음택풍수(陰宅風水)
풍수지리학은 크게 집과 건물의 터를 잡는 양택풍수와 묘 자리를 잡는 음택풍수로 나뉜다. 양택(陽宅)은 산 사람의 거주지이며, 음택(陰宅)은 죽은 사람의 안장지(安葬地)이다. 양택지와 음택지를 선정하는 방법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나, 양택지가 음택지에 비해 대체로 보국(保局)이 크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도읍지와 마을 터를 정해 집을 짓는 양택풍수가 발전하였다. 조선중기 이후로는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과 더불어 음택풍수가 성행하였다. 풍수지리하면 단순히 개인의 묘 자리나 잡는 것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음택풍수보다 양택풍수가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도시화된 지역에서는 터 잡기보다는 집의 형태와 구조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양택과 음택은 모두 지기(地氣)의 영향으로 발복(發福)이 나타난다. 음택은 발복의 속도가 느리지만, 여러 자손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준다. 반면에 양택은 그 집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사람, 그리고 현재 거주하는 사람에 한해서 매우 빠르게 영향을 준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
5.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
(1) 현대적 의미
묘의 좋고 나쁜 기운이 후손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발음(發蔭), 발복(發福) 또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이라고 한다. 조상과 후손은 같은 혈통관계로 같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감응을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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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전적 의미
『청오경(靑烏經)』과 함께 풍수지리 최고의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는 『금낭경(錦囊經)』은 진(晉)나라 사람 곽박(郭璞, 276-324년)이 쓴 책이다. 곽박은 천문(天文), 오행(五行), 점서(占筮)에 능한 사람으로, 진나라 사마예(司馬睿)가 황제가 되었을 때 복지(卜地)와 점택(占宅)을 담당한 고위 관리였다. |
(3) 동기감응의 전달 체계와 길흉화복
위와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동기감응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동기감응을 부정한다면 현대 과학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이상 무언가에 반응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 대상은 그와 원자번호와 질량이 같은 동위원소다. 유골도 물질로 존재하는 이상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과 원자번호와 질량이 같은 동기(同氣)의 자손에게 반응한다. 만약 유골이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지기(地氣)를 받고 있다면, 좋은 기를 발산하여 자손에게 전달해준다. 나쁜 환경에 있다면 나쁜 기를 발산하여 자손이 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조상 유골을 명당길지(明堂吉地)에 모시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6. 풍수지리의 역사와 서적
예로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또는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자기가 생활할 터전을 찾아왔다. 원시사회에서는 좋은 자리를 찾으면 먹고 쉬고 자는데 편리했다. 뿐만 아니라, 적으로부터 자신과 동족을 보존하고 번창시키는데 용이했다. 이렇게 풍수지리는 안전편리하면서 발전 가능한 땅을 찾는데서 발생하였다. |
(1) 한(漢)나라 시대와 『청오경(靑烏經)』
중국 한(漢)나라 시대는 조상의 묘지가 후손에게 영향을 준다고 믿어왔다. 후한 장사가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우리나라 부족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2) 진(晉)나라 시대와 금낭경(錦囊經)
지금으로부터 약 1700년전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즈음하는 중국의 진(晉)나라 때 사람 곽박(郭撲, 276-324년)이 『청오경(靑烏經)』을 인용하여 『금낭경(錦囊經)』을 저술하였다. 그는 책 곳곳에 ‘경왈(經曰)’하면서 『청오경(靑烏經)』을 인용하였다. 이 때문에 『청오경』을 장경(葬經)이라 하고, 『금낭경』은 장서(葬書)라고 부른다. |
(3) 당(唐)나라 시대
우리나라의 통일신라시대에 해당되는 당나라 때는 모든 문화가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풍수지리학도 마찬가지로 크게 발전하였다. 이 때는 간단한 나경패철(羅經佩鐵)을 이용하여 방위와 좌향(坐向)을 측정하기 시작하였다. 양균송(楊筠松), 장설(張說), 홍사(泓師), 장일행(張一行), 증문적(曾文迪), 요금정(寥金精), 복응천(卜應天) 등 풍수지리학 방면에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
(4) 송(宋)나라 시대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 해당되는 송나라 때의 풍수지리학은 이기론(理氣論) 방면에 크게 발전하였다. 소강절(邵康節, 1011-1077년)은 하도와 낙서의 도수를 응용한 『방원육십사괘도진(方圓六十四卦圖陳)』을 만들어 산수(山水)의 방향을 측정하여 길흉(吉凶)의 연도를 계산하였다. 이는 이기(理氣) 분야를 하나의 독립된 계통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
(5) 명(明)나라 시대
우리나라의 고려 말과 조선 중기에 해당되는 명나라 때의 풍수지리학은 오늘날의 풍수지리학계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는 협소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폭넓은 수용자세로 연구가 활발하였다. 그 중에서도 구성법(九星法)의 응용으로, 이기론(理氣論) 분야에 새로운 학설이 개척되었다. 또 나경 학설의 발전으로 더욱 세밀한 부분까지 묘 자리와 집터를 측정하여 시간과 공간을 서로 연관성 있게 다루었다.
2) 『명산론(明山論)』
3) 『지리인자수지(地理人子須知)』
4) 『지리대전(地理大典)』
5) 『지리오결(地理五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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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靑)나라 시대
우리나라의 조선중기 이후에 해당되는 청나라 때의 풍수지리학은 택일(擇日)에 의해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조명택일(造命擇日)을 중요시 여기면서 장택론(葬擇論)을 발전시켰다. |
(7)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역사와 서적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풍수사상이 전개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우리 고유의 자생적 풍수와 관련해서, 『삼국유사』에는 신라 4대 왕인 탈해왕(80년)이 집터를 잘 잡아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의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져 있다. 현존하는 사찰 등의 지형지세를 미루어 보면, 삼국 초기부터 국가 경영과 국민의 생활 편리에 풍수가 실용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http://www.poongsoojiri.org/da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