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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까지 바친 충절. 유응부의 마지막 선택!

수맥박사 2025. 2. 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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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무관 유응부

조선 제 5대 임금인 문종이 승하한 후 불과 12세에 나이 어린 단종이 보위을 계승하자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위를 찬탈하고 어린 조카 단종을 강제로 영월로 유배 보냈다. 이에 성삼문 박팽년 유성원 하위지? 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과 무관 유흥부 등은 새로이 등극한 세조를 폐하고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같이 거사를 공모한 김질의 밀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처참한 말로를 맞게 되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일컬어 사육신이라 하여 추모하였다. 

그중 유응부는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무술이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청렴 결백을 제일로 여긴 그는 과연 무관 출신답게 기백이 있었다. 명나라에서 온 사신을 위한 연회가 대궐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지던 날이었다. 유응부는 이날 밤을 거사를 도모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세조를 비롯하여 여러 문무 백관들이 거나하게 술에 취해 흥이 오를 무렵 유응부는 박팽년과 성삼문 곁으로 은근히 자리를 옮겨 앉았다. 

오늘 밤이오? 오늘 밤이 하늘이 내린 기회가 아니겠소 낮지만 힘이 들어간 유응부의 말에 박팽년과 성삼문은 적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모두들 술에 취해 있는 데다 밤늦도록 연회가 열릴 테니 대궐 경비가 허술할 것이오 그러니 오늘 밤 당장 해치웁시다. 이대로 오래 끌다가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오 그러나 성삼문은 내키지 않는 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아니 될 것 같소 명나라 사신까지와 있는데 괜히 일을 벌였다간 거사가 성공한다 해도 명나라의 미움을 사게 될지 모르지 않소 박팽년도 거들고 나섰다. 

그렇소 나도 같은 생각이오 자칫 잘못해서 일을 그르쳤다가는 삼족이 멸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 유응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말이오 아니 그럼 공들은 그만한 결심도 없이 거사를 도모한단 말이오 그건 절대 아니요 이미 목숨을 바치기로 한 몸 죽음인들 두렵겠소 다만 좀 더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오 나 역시 박공의 말에 동감이오 굳이 오늘 밤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머지않아 다시 올 것이오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유응부는 앞에 놓인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듣기 싫소 기회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오 이보시오 박팽년이 더 뭐라고 말하려 하자 유응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 무인들에게는 싸움에서 터득한 직감이라는 게 있소이다. 한 번 놓치면 필시 두 번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 법이오 유응부는 짐짓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술만 마셨다 유응부의 직감이 적중했던 것일까. 며칠 후 그들은 다시 만나 거사일를 정하였으나 그날이 오기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거사를 모의한 이들 중 한 명인 김질이 동지들을 배반하고 밀고한 것이었다. 유응부를 비롯한 집현전의 다섯 학사들도 모두 잡혀 엄한 문초를 받았다. 

그러나 모두들 의연한 태도로 끝까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고 왕실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세조의 폐위와 단종의 복위를 부르짖었다. 유응부도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가 살갗을 파고들 때도 남아다운 기상으로 호방하게 웃으며 큰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인두가 식었구나 뭣하는 게냐 어서 더 달구지 않고 하하 하
군사들이 시뻘건 불속에서 금방 꺼낸 인두로 다시 살을 지지면 유응부의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이놈들 그것도 인두질이라고 하는 게냐 그 정도로는 돼지 비계 한 점도 못 굽겠구나 하하 하하 주위은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와 매쾌한 연기가 코를 찔러 구역질이 날 정도였으나 고문은 조금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혹독한 고문을 견디다 못한 유응부는 죽어도 씻지 못할 한을 가슴에 품은 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집현전의 다섯 학사들도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응부가 얼마나 청렴 결백했는지는 생전에 일화를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유응부는 벼슬이 이품 재상의 반열에 올랐는데도 밥상에 고기 한 점 없이 늘 채소와 나물 몇 가지로 반찬을 삼았으며 방문 대신 언제나 멍석을 발처럼 치고 살았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아우가 하루는 유흥부를 찾아와 탄식하듯 말했다. 

형님께서 벼슬길에 올라 이제 재상까지 되셨는데 어찌하여 밥상에 기름진 고기 반찬 한 점 없고 방문도 없이 사시사철 멍석을 치고 사십니까? 그러자 유응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내 녹봉으로 고기반찬을 먹는다면 이는 필시 녹봉 외에 헐벗는 백성의 고혈을 짜낸 것이고 호화로운 발을 치고 산다면 그 역시 아첨하는 무리들에게 부당한 뒷돈을 받은 것이라네. 아우가 말을 잃고 앉아 있는데 유응부의 마지막 말이 사육신으로 청사에 길이 기록될 앞날을 예견하듯 뒤를 이었다. 나는 예전에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신하된 자의 도리를 지키고 불의와 야합하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죽는 길을 택할 것이다.


사육신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긴 유응부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조선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의 삶은 청렴과 정의로움, 그리고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의 정통성을 위해 목숨마저 바쳤던 충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유응부의 이러한 모습은 후세에까지도 오랫동안 존경받으며, 조선 역사 속에서 진정한 무인의 기개가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유응부가 보여준 기개와 충절은 단순히 개인의 신념에 그치지 않았고, 오롯이 조선의 정통성과 정의를 위한 희생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며 절개를 지켰고, 이러한 모습을 통해 사육신의 이름은 후세에 정의와 신념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응부를 비롯한 사육신들이 보여준 충절과 희생은 우리에게 진정한 도리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합니다. 이들은 개인의 영달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진정한 충신으로 한국사에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는 유응부와 사육신의 희생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충절은 단순히 문종과 단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고 왕권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응부가 보여준 용기와 신념은 단순한 무인의 기개를 넘어, 사리사욕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정신으로 평가됩니다. 

오늘날 유응부를 비롯한 사육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의와 충의의 본질을 되새기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바름을 지키려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후세 사람들은 유응부를 비롯한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며 이들의 업적을 잊지 않았습니다. 유응부의 삶은 단지 고난을 감내한 한 사람이 아니라, 정의와 도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단종에 대한 충성과 나라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으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유응부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며, 의와 정의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훌륭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유응부와 사육신의 이야기는 단순한 옛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의미를 던집니다. 개인의 안락함보다는 나라와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희생정신은 우리에게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교훈을 줍니다. 

유응부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목숨을 바쳤고, 그의 용기와 충절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습니다. 유응부가 목숨으로 증명한 올바름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조선의 귀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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