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쓴 양반들의 性 담론
1.전라도 어느 곳에 경진사라는 양반이 있었다.
마침 그의 딸이 나이가 꽉 차 이웃 고을 임생원 아들을 신랑감으로 맞이해 예정된 날짜에 화촉을 밝혔다.
그런데 신랑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필 배꼽 아래 종기가 생겨 그 중요한 일을 전혀 치르지 못하고 신부집에서 허송세월한 뒤 하릴없이 부모님께로 돌아갔다.
경진사는 딸을 불러 직접 질문을 던졌다. “임서방이 그 일을 알더냐?”
딸은 울면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러자 경진사는 걱정이 되어 이미 결혼한 지 오래여서 알 것을 다 아는 큰딸을 불러 사정을 알아보라고 명령한 것이다. 큰딸로부터 답이 왔다. 작은딸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망쳤어. 신랑은 사내 구실을 못하는 병신이야!”
경진사 부부는 거듭 대책을 숙의하던 끝에 바깥사돈 임생원에게 항의편지를 보낸다.
구실은 아주 유교적이다. ‘신랑이 사내구실을 못해 외손자 볼 희망이 없다.
그래서 원통하다’는 것이었다. 임생원도 기대 이상이다. 임생원은 즉각 반박성 편지를 보내온다.
‘사돈이 언제 우리 아들 양물을 봤다고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오?
요전날 다리 밑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우연히 봤소만 참 큽디다.
왼손으로 가리면 오른쪽이 남고, 오른손으로 가리면 왼쪽이 남습디다.
어디 그뿐이오. 우리 이웃 김호군네 막덕이란 계집종을 진즉 첩으로 둬 벌써 2남매를 낳았소.
내 아들놈이 고자라니, 섭섭하오. 장가가던 날 손이 들어서는 쪽으로 출행했기에 그런 거라오.’
경진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내에게 편지의 내용을 알렸다.
아내는 더욱 현실적이었고 매우 신중했다. “아무 증거도 없이 사돈의 말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이오?
바깥사돈은 분명히 아들 체면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노부부는 수심에 잠겼다. 그때 맏사위 우서방이 등장한다. “이거 큰일났네. 둘째사위 임서방이 아무래도 고자가 분명해!”
며칠 뒤 새신랑 임서방이 다시 처가에 들렀다.
우서방은 임서방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때려눕힌 다음 양물을 손수 점검한다.
“장인, 장모님! 신부는 복이 터졌습니다. 임서방 물건이 참 큽니다!”
밤이 되었다. 경진사는 신방에 불을 밝힌 다음 신랑 신부를 들여보내고 몰래 뒤꼍으로 가서 창문에 구멍을 뚫어놓고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
그새 임서방의 종기는 다 나았다. 아버지 임생원의 꾸중도 적지 않았다.
방사(房事)는 강하다 못해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그날은 둘째딸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첫날밤이어야 했다.
그런데도 벌써 무아지경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쨌거나 경진사는 허겁지겁 안방으로 뛰어든다. “여보, 마누라! 신랑이 그 일을 해, 참 잘해! 시렁 위에 얹은 고리짝을 내려오오. 얼른 홍시를 갖다줘야지.”
2. 어떤 양반이 열 살이 좀 넘은 어린 아들을 장가보냈다. 신부는 그보다 대여섯 살 더 먹었다. 신랑이 본가로 오는 날, 신부를 태운 가마가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어린 신랑이 기겁해 소리를 질렀다. “저 여자가 왜 우리 집에 왔어? 지난번 저 여자 집에서 잘 때 내게 팔베개를 해주고 두 다리로 나를 막 끌어안더라.
그것을 밤새 주무르고 내 배 위로 올라와 씩씩거렸다고.
그런데 왜 우리 집에 왔어? 날 또 못살게 굴려고 온 거지? 난 싫어!”
3.얼굴과 몸매가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그의 나이 18세가 되자 부모는 서둘러 혼처를 정해 뒀다. 시집가기 전 어느 날 밤, 처녀는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뒷집에 들렀다.
마침 그 집에는 총각이 있었는데, 그는 처녀를 보자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충고했다.
“이제 곧 시집가게 되었다지? 미리 꼭 배워야 할 일이 있지. 미리 배워두지 않으면 소박을 맞을 거야.” ‘소박’이라는 소리에 처녀는 그 일을 반드시 배우기로 했다.
처녀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간 총각은 성교를 가르쳤다.
총각은 성행위에서 여성이 선사할 ‘6희’를 논했다.
총각이 말한 6희는 남성의 입장에서 본 성적 만족의 조건이었다.
착(窄, 좁고)?온(溫, 따뜻하고)?치(齒, 꼭 물 것이며)?요본(搖本, 몸뚱이를 흔들다가)?감창(甘唱, 즐거운 비명을 지르다)?속필(速畢, 빨리 끝낼 것)이라고 했다.
총각은 처녀에게 요본과 감창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처녀는 밤마다 총각을 만나 그 기술을 연마한다.
그러다 시집간 첫날밤, 신부는 요본에 감창까지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
신랑은 신부가 처녀가 아님을 눈치챘고, 신부는 울며 친정으로 쫓겨 온다.
딸을 붙들고 어머니가 다그쳐 묻는다. 딸은 뒷집 총각 이야기를 실토한다.
어머니는 “이것아. 어째 그런 기술을 써먹었느냐”며 화를 낸다.
4.어느 절에 음흉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아랫마을 사는 박씨·김씨·이씨와 아주 친했다.
언젠가 한번은 두부를 만들어 세 집 부인들더러 가져가라고 했다. 절에 온 부인들에게 스님은 말한다. “절의 음식을 가져가려면 먼저 부처님 앞에 나아가 잘못을 고백해야지, 아니면 큰 벌을 받습니다.”
부인들은 계속 망설였다. 그러자 스님의 명으로 불상 뒤에 미리 숨어 있던 사미승이 부처님 흉내를 낸다. “너희가 간음한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어서 사실대로 말하라.”
부인들은 사시나무 떨듯 했다. 박씨의 아내가 고백한다. “저는 시집오기 전 집에 드나들던 총각과 숲에 가서 정을 통했어요.”
김씨의 아내가 말을 잇는다. “한 동네 사는 남자가 첫날밤을 보내는 예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저를 유혹했어요.
그러다 아이까지 갖게 되었어요. 아이를 부모님이 파묻으시고 김씨에게 저를 시집보냈어요.”
이씨 아내도 자백한다. “저희 집에는 남편 친구 한 사람이 자주 오는데, 그와 눈이 맞아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어요. 남편은 전혀 모르지만 이게 어디 제 잘못인가요?”
“죄를 솔직히 고백한 그대들을 모두 용서하노라.” 사미승이 낸 소리였다. 스님은 곧 불상 앞에 꿇어앉아 부처의 영험함을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남편들에게 고백할 때라고 말했다. 부인들은 애원했다.
제발 그 말만은…. 스님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며 부인들을 골방으로 안내하여 차례로 즐기더니 많은 시주를 약속받았다.
5.점잖게 갓을 눌러 쓴 채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사랑방에 정좌하고 있었을 것만 같은 조선시대의 양반들.
주야장천, 사시사철 늙어 죽을 때까지 그들은 ‘사서삼경’에 이(理)와 기(氣), 사단칠정(四端七情)이 어떻다는 둥 성현의 말씀만 되풀이 읽게 돼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의 양반들에게도 이른바 골계(滑稽)라는 것이 있었다. ‘골(滑)’은 ‘어지럽게 한다’는 뜻이고, ‘계(稽)’는 ‘같다’는 의미다.
따라서 골계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진위를 분간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풀이된다.
유명한 골계집으로는 강희맹의 <촌담해이>,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 송세림의 <어면순>, 성여학의 <속어면순> 등이 있다.
이런 책들은 <고금소총>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이기도 했다. ‘고금소총’이란 예와 오늘을 통틀어 웃기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책에 대해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골계는 양반들이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지은 육담(肉談)에 불과했고 한낱 우스갯소리일 뿐이라고.
양반의 엄격한 생활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학자들은 이른바 육담에서도 풍자로 세상을 바꾸려는 선비의 높은 기상이 보인다고 한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 푸른역사연구소장 백승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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