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수맥 자료
울진, 격암 남사고 上
수맥박사
2012. 12. 29. 10:58
俗名만 버리면 신선이 될 수도…” 전우치, 희대의 도인을 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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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 조성된 격암 남사고 유적지. 왕피천과 성류굴을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조성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울진 출신의 격암 남사고(格菴 南師古·1509∼71)는 조선 중기 최고의 예언가로 불린다. 평생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던 그는 역학·천문·복서·관상에 능했다. 또 풍수학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특히 동서분당을 비롯해 임진왜란, 문정왕후의 죽음, 선조 즉위를 예언해 ‘동양의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고 있다. 스토리텔링 시리즈 ‘스토리가 있는 울진’에서는 앞으로 3회에 걸쳐 격암 남사고의 예언과 그의 비범한 삶을 다룬다.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역사적 사실과 울진지역에 전해져오는 다양한 설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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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 유적지에 있는 자동서원. 남사고와 교류한 봉래 양사언은 남사고의 주역강론을 흠모해 그를 ‘자동선생(紫洞先生)’이라 칭하며 우러렀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십칠팔 년 저쪽 기묘사화 때, 조광조 일파로 몰려 삼척부사로 좌천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울진의 불영사를 관람하고 풍광 좋은 수천대(水穿臺-지금의 주천대(酒泉臺))에서 잠시 쉬고 있던 낙봉은 우연히 스물 남짓한 준수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청년은 만호공파의 파시조인 남호의 증손이자 이조좌랑을 지낸 남희백의 아들로 이름이 남사고(南師古)라고 했는데, 대화를 나누어본 즉 소학, 천문, 역학은 물론 관상학에도 조예가 뛰어난 바가 있었다. 더욱이 약관의 나이로 마땅한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이룬 성취여서 더욱 그러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변방으로 쫓겨난 자신의 신세가 걱정되어 앞날을 물었더니 대답 대신 땅바닥에 ‘이구후사장(二九後師長)’이라고 적었다. 그건 18년 후에 자신이 다시 대사성으로 중용될 일을 예견했던 것으로,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얘기를 들은 전우치가 의미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규암이 그 이유를 묻자 전우치는 일찍이 청년이 어린 소년이었을 때 한번 만나본 적이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 전우치는 그 소년이 천자의 주성(主星)인 자미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천고기재로,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깨닫는 능력을 지닌 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고 했다. 게다가 소년의 사주를 풀어보니 열다섯 즈음에 기연을 만나서 높은 성취를 이루게 되며, 도인으로 후대에 크게 명성을 떨칠 인물이 될 것이라고 나왔다.
“가령 화담(花潭, 서경덕)이나 정북창(해동이적에 나오는 도술가)하고 비교한다면 어떠하겠소?”
남사고에 대한 찬사를 듣던 규암이 물었다.
“화담이 당대의 학자이자 현인이라면 정북창은 시대의 이인(異人)이고, 남사고는 희대의 도인이 될 그릇이라 하겠지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우치가 말을 아끼자 궁금해진 두 사람이 뒷말을 다그쳤다. 한참을 머뭇대던 전우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속명(俗名)만 버리면 신선이 될 수도 있을 것을. 하기야 그건 그 자신의 수양에 달려 있는 일이지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전우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전우치의 예측대로 남사고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재기가 넘쳤다. 하지만 거주지가 외진 산촌인지라 마땅한 스승을 구할 길이 없던 그는 홀로 소학을 즐겨 탐독했고, 산자수명한 울진의 불영계곡과 남수산(嵐岫山), 그리고 주천대를 오가며 명상에 잠기길 즐겨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사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해와 태백준령, 그리고 깊은 계곡을 고루 갖춘 울진의 빼어난 자연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사기나 경전을 익히기보다 자연의 현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하늘과 땅, 해와 달, 물과 불, 밤하늘을 가르는 별의 운행에 마음이 이끌렸다. 또한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이르는 사계의 변화에 따른 초목들의 생장과 소멸,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 어떤 기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건 일정한 법칙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총명한 그로서도 혼자 그 비밀을 풀기에는 아직 배움이 적었고, 어린 나이였다.
그가 열다섯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삼라만상의 이치를 궁리하며 산세 드높고 물빛 수려한 불영계곡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득 그의 눈에 열댓 장이나 솟아오른 높다란 바위절벽 위에 뿌리내린 천년장송 옆에 흰 심의(深衣)를 입은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노인의 몸으로 어떻게 저리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까 생각하는 사이에 노인이 훌쩍 허공을 날아서 그의 앞에 내려섰다. 깜짝 놀라는 그를 요조모조 살펴보던 노인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원명경(三元明鏡)의 점괘대로 과연 동방의 기재가 여기에 있었구나.”
백발에다 허연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선풍도골의 노인은, 금강산에 사는 운학도인(雲鶴道人)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부득불한 일이 생겨서 그를 찾아왔다고 했다. 도인의 얘기인 즉 이제 곧 속세와의 인연이 끝나서 선계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동안 재미삼아 써놓은 책자를 가져갈 수가 없어서 넘겨줄 마땅한 후계자를 널리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도인은 품속에서 귀가 닳은 두 권의 책을 꺼냈다.
“네게 천품(天品)이 있어 보여서 이 비서(秘書)를 주려고 한다. 한 권은 복서(卜筮)와 상법(相法)에 관한 책이고 또 한 권은 천문과 역학을 기록한 책이니라. 하지만 아쉽게도 두 번째 책은 시간이 부족하여 완성을 하지 못하였구나. 네가 이런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고 있느니, 이 책들을 받겠느냐?”
남사고로선 고소원이나 불감청이었다. 발품을 팔아서 찾아다니지는 못할망정 우연히 나타난 도인이 주는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허나 이 비서를 받기에 앞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책에 적힌 것은 모두 천기(天氣)에 관계된 내용들이라 사사로이 발설하게 되면 집안의 대가 끊어지는 화를 입게 될 터인데, 그래도 괜찮겠느냐?”
남사고는 주저했다. 자고로 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멸문의 죄만큼 조상에게 불효한 죄는 없었다. 그러나 평소 세상 이치에 대한 지식에 목말라 했던 그인지라 백발도인이 건네는 책에 대한 염원이 너무 강했다. 그는 마음을 굳혔다. 어렵지만 조심하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다. 그 결정이 후일 어떤 무참한 결과를 불러올지, 어린 그로선 미처 알지 못했다.
“책을 받겠다니 나로선 다행이구나. 자, 받아라.”
두 권의 책을 넘겨준 도인은 품속에서 다른 한권의 책을 꺼냈다. 겉표지에는 붉은 주사(朱砂)글씨로 ‘풍수지리록’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지막 이 책은 너에게 못다 한 공부를 넘겨 수고로움을 끼친 대가로 주는 것이니 틈틈이 익혀두면 장차 생계에 도움이 될 것이니라.”
그날부터 남사고는 노인이 준 책자로 공부에 들어갔다. 책은 매우 난해하고 어려웠다. 도인이 남긴 책이라 범인이라면 수십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어린 남사고 역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타고난 총명함에 뛰어난 이해력, 높은 학구열까지 겸비한 그는 하루하루 책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독서에 빠져 있다가 끼니를 잊거나 밤을 꼬박새운 때도 적지 않았다. 또한 책에 담긴 오묘한 내용과 깊이로 인해 깨우침의 한계를 느낀 적도 많았다. 그건 배우려는 자에게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주천대와 남수대를 비롯한 울진의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거닐며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내곤 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즉에 책을 내던지고 말았을 것이다.
수 년여에 걸친 집중적인 공부 끝에 그는 조금씩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상법을 익히면서 사람들의 관상을 보아 앞날의 명운을 뚫어볼 수 있게 되었고, 복서를 풀어서 길흉화복이 언제 어디에서 닥치게 되는가를 미리 점칠 수 있었다. 또 풍수지리록을 통해서 도(道)로 일컬어지는 음양오행의 조화와 용(龍), 혈(血), 사(砂), 수(水), 사법의 신묘함, 아울러 사법에서 비롯되는 산과 물, 그리고 방위를 읽어내는 법을 익혔다. 간룡(看龍)과 장풍(藏風), 득수(得水), 정혈(定血)의 묘리를 깨우친 것도 물론이었다.
그러나 운학도인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천문과 역법을 다룬 두 번째 책은 오랜 기간 그의 연구과제로 남았다. <다음회에 계속>
글=박희섭 (소설가·영남일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도움말=울진문화원, 윤대웅 울진문화해설사
공동 기획 : 울진군
◆ Story Tip
수곡리 ‘남사고 유적지’ 왕피천·성류굴과 연계 천혜의 관광지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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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 유적지 앞으로 흐르는 울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왕피천.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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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조성과 더불어 울진에서는 남사고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울진문화원은 지난해 4월 ‘격암사상선양회’를 창립하고 다양한 학술연구와 유적지 재정비를 통한 문화관광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다.
- 보금 풍수 수맥 연구소 -